top of page

Groups Feed

View groups and posts below.


This post is from a suggested group

# 171. 기도의 시간, 제 5권 7호, 5월 7일 목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가벼운 눈빛이나 짧은 감탄사만으로도 모든 마음이 전달되곤 하죠. 성경이 말하는 ‘방언’ 또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그 친밀한 사귐을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소통 방식입니다.


​방언은 내가 이해하는 단어의 한계를 넘어가는 기도입니다. 때로는 내 이성이 "감사합니다"라는 한 문장에 머물러 있을 때, 내 영은 방언을 통해 그보다 훨씬 깊고 풍성한 고백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로마서 8장은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라도,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내 지식의 경계를 넘어 성령의 파도를 타고 하나님 마음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묻습니다.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하지만 방언은 논리의 대화라기보다 '사랑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구체적인 문장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흐르는 깊은 신뢰의 표현이죠.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 앞에서 옹알이를 할 때, 부모는 그 소리 속에 담긴 기쁨과 욕구를 다 알아듣고 미소 짓는 것과…


5 Views

This post is from a suggested group

# 170. 방언이 뭐지? 제 5권 6호, 4월 29일 수

방언을 떠올리면 어떤 사람은 신비를, 어떤 사람은 부담을 느낍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앙의 '레벨 업'처럼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문제를 그렇게 긴장된 주제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꽤 현실적으로 바라보며 과장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방언은 사람들이 실제로 알아듣는 언어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였죠. 그런데 고린도전서에 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교회 안에서 방언이 넘치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수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바울은 방언의 본질을 분명히 합니다.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말, 즉 개인적인 영적 소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에서는 깨달은 다섯 마디가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 여기서 기준이 나오는데 그것은 '개인의 체험'보다 '공동체의 유익'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방언을 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이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질서를 강조합니다. 결국 문제는 방언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우월감도, 강요도, 무시도 모두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방언은 겉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아무도 못 알아듣는 말을 하니까요. 하지만 이것을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6 Views

This post is from a suggested group

# 169, 올바른 방향성과 지속성, 제 5권 5호, 4월 26일

우리는 삶을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삶이라는 여정속에서 나아가는 올바른 방향성입니다.그리고 두번째는 그 방향이 옳다고 여겨지면 지속하여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닌, 교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 역시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겨지만 지속하여 꾸준히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방향은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 희미해 질 때 교회는 인간적인 모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교회가 교회의 존재 목적인 영혼 구원 사명을 붙잡고 애쓸 때 교회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교회가 많은 사역을 하지만 영혼 구원의 열정이 식으면 교회는 점점 힘을 잃고 약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일이 분주하다고 그것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번 주 몸이 피곤하다고 하나님의 소원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 신앙생활 가운데 올바른 방향 즉, 영혼 구원의 열정을 놓고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혼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우실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과 더…

10 Views

This post is from a suggested group

#168 개미에게서 얻는 지혜, 제5권 4호, 2월 26일 목

이 집에 이사온지도 벌써 일년하고도 두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세월이 참 빠른것 같습니다.

이 집에 처음 이사오던 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바닥을 보니까 개미가 주차장에서 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주차장에만 있었고 집 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말 큰일을 치루고서 3주만에 처음으로 부엌뒤에 식품 창고?에 들어갔더니 개미가 한 가득 있었습니다. 아무리 외로워도 개미와 동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개미가 새롭게 터전을 잡은 이유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보다보니 저희 창고에 '팜슈가' 봉지가 살짝 뜯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팜슈가'를 버리고 난 후 2~3일이 지나니까 개미들이 싹 없어졌습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시간이 지나 개미로부터 자유하며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난주부터 커피머신 주위로 개미가 또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엔 무엇일까 열심히 찾았는데 이번에는 꿀통 뚜껑에 보이지도 않는 구멍으로 왔다 갔다하며 저의 꿀을 누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꿀통을 잘 닦아서 다른 통 위에 올려놨습니다. 그랬더니 이녀석들을 다시 부엌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녀석들은 '공동체 생활'에 매우…

20 Views

This post is from a suggested group

#167 테트리스, 제5권 3호, 2월 17일 화

어린 시절 오락실을 가면 버블버블 다음으로 많이했던 게임이 아마도 테트리스였던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은 빈칸 없이 차곡차곡 블럭들을 잘 쌓아가다보면 다 채워진 줄은 자동으로 없어지고 그렇게 일정 량의 줄들이 없어지면 그 다음 단계로 승급되어 계속 진행되는 게임입니다. 빈칸이 있으면 안되는 곳에 빈칸들이 생기다 보면, 줄을 없애지 못하고 게임에서 지게 됩니다.


요즘 저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처해있는 상황에서 공허함을 종종 느끼곤 하는데, 이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에 대해 기도하며 고민을 하곤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가운데에서도 공허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계실수 있으시기에 이번 칼럼은 공허함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 공허함은 당연히 하나님으로 채워야 하고, 말씀으로 채워야 하고, 성령님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다른 또 다른 영역인지 뭔지 계속해서 유지되는 이 공허함은 테트리스에서 꼭 채웠어야 했던 곳을 채우지 못한채 그 위로 끝없이 블럭들이 쌓여만 가는 느낌입니다.

빈 곳을 기도로도 채워보고 말씀으로 채워보고 순종으로도 채워봤지만 채워졌다는 기대만큼의 감동은 못 느끼고…

23 Views

This post is from a suggested group

#166 견고한 진 Vs 성령의 전, 제 5권 2호, 2월 9일 월

견고한 진(Stronghold)은 성경적 표현으로 '사탄의 요새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 의미로는 '사람의 생각 속에 굳게 자리 잡은 사단의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우리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예를들어 표현해 보면, 일반적으로는 좋은 사람인데 어떤 상황만 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갑자기 화를 낸다던지, 갑자기 고집 불통이 된다던지, 갑자기 급 다운이 된다던지, 갑자기 거칠어 진다던지, 갑자기 잠수를 탄다던지 하는 종류의 모든 상황들이 '견고한 진'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견고한 진'은 우리를 끝없이 '나누고 부수는' 사단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것이 이끄는대로 계속 따라가다 보면, 어둠으로 충만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전'인 우리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로만 살면 됩니다. '견고한 진'은 '성령의 전'을 조금씩 무너뜨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원하는대로만 산다면 '성령님'께서 힘을 쓰실 수 없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어두움으로 잠식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을 인정하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기대하는…

18 Views
ho suk lee
ho suk lee
Feb 09

아멘~감사합니다 ~

This post is from a suggested group

#165 은혜와 사랑의 빛, 제 5권 1호, 2월 2일 월

예전 고등학교 때 저는 중창반이었습니다. 그때 많이 부르던 곡 제목이 '주의 크신 은혜로써 구원을 받았네'였습니다. 오늘따라 이 곡과 함께 '은혜'가 묵상되어 작년 12월 3일 이후 약 2달만에 다시 한번 정신차리고 칼럼을 적어봅니다.

'은혜'의 기본 개념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그것을 누군가가 생명을 다해 이뤄주었을때'의 반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구원'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만 '은혜'일까요?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은혜를 심어 놓으신 것 같습니다.

천국에 들어간 제 아내는 '구원'을 받았기에 '온전한 은혜'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천국에 갈 것이기에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빛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나오는 '은혜'가 우리에게 빛으로 비춰질 때 우리는 그것을 아마 '사랑'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들은, 누구를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 받을 자격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사랑을 할 수도 있고, 사랑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주변에 누군가가 가여워서 눈에 밟힌다면 아마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에서 '사랑'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20 Views

This post is from a suggested group

멜번방주교회 아동부
멜번방주교회 아동부

Joyful Play Group Term 1 Plan

2026년 2월 4일부터 텀1 플레이 그룹이 시작 됩니다.
2026년 2월 4일부터 텀1 플레이 그룹이 시작 됩니다.

11 Views

This post is from a suggested group

* 기도해야 영적인 세계가 열린다 (박창환 목사: 판교꿈꾸는 교회)

목회 서신(20)


“기도해야 영적인 세계가 열린다”


신앙은 윤리가 아닙니다. 도덕도 아닙니다. 마음의 위로를 받는 정도가 아닙니다. 좋은 정보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정도라면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욥기에서 욥의 친구들은 모든 것을 인과응보로만 봅니다. 원인과 결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1장부터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도가 왜 중요할까요? 기도하면 이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물질 세계만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의 문제는 물질 세계의 것만 구한다는 것입니다. 돈, 건강, 배우자, 직장을 구합니다. 주시지 않으면 기도응답이 없다고 할때도 있습니다. 믿음이 저속한 것입니다. 믿음이 저속하면 기도도 저속합니다. 믿음의 차원이 기도의 차원을 결정합니다. 기도의 수준이 믿음의 수준입니다.


35 Views
무제.001.png

​멜번방주교회 & ALF

©2024 by Melbourne Bangjoo Church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