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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해야 영적인 세계가 열린다 (박창환 목사: 판교꿈꾸는 교회)

목회 서신(20)


“기도해야 영적인 세계가 열린다”


신앙은 윤리가 아닙니다. 도덕도 아닙니다. 마음의 위로를 받는 정도가 아닙니다. 좋은 정보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정도라면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욥기에서 욥의 친구들은 모든 것을 인과응보로만 봅니다. 원인과 결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1장부터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도가 왜 중요할까요? 기도하면 이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물질 세계만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의 문제는 물질 세계의 것만 구한다는 것입니다. 돈, 건강, 배우자, 직장을 구합니다. 주시지 않으면 기도응답이 없다고 할때도 있습니다. 믿음이 저속한 것입니다. 믿음이 저속하면 기도도 저속합니다. 믿음의 차원이 기도의 차원을 결정합니다. 기도의 수준이 믿음의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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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이번 사건을 지나면서, 제 4권 47호, 12월 3일 수

스트레스 대처에 관계된 글을 보니까, 세상을 살다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개의 사람들은 '현실감'이 상실되고 '원망'이 분출되며 '슬픔'이 깊어지며, 강한 '불안'과 '후회, 죄책감'이 다가오고, '집중력'이 저하된다고 합니다. 저희 교회는 이번 제 아내의 사건으로 아마 모든 성도분들이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과는 차별됩니다. 일반적인 죽음은 슬플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앞으로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야 디~~야'라고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남은 시간 잠시 더 살다가 주님 계신 영원한 그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쉬운 마음이야 감출 수 없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이 아닌, 영원히 함께 할 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슬프다가도 기쁘고 기쁘다가도 아쉬운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스트레스의 반응이라고 소개해 드린, '현실감 상실', '원망', '후회', '죄책감', '집중력 저하'의 해결책에 대해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나의 소망이 '하늘'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 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빌립보서 3:20)', '너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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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마카리오스, 제 4권 46호, 11월 17일 월

지난 주일 연합예배는 제게 개인적으로 큰 은혜와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랬던 이유로는, 그동안 이민 교회 사역을 하면서 늘 눈치보면서 장소를 사용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제 폴 목사님과 레리 할아버지의 나눔은 마치 부자 집 주인 형님이 동생들에게 오셔서 이제는 진짜로 친 형제하자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셨던 말씀이 방주교회와 ALF는 본인들 기도의 응답이라는 말씀은 감사의 정도를 넘어서는 감동의 고백이셨습니다. 저희도 장소를 위해 기도를 했었습니다. 이민 교회치고 교회 장소를 놓고 기도 안 하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귀한 교회로 들어오게 된 것이 저희의 기도응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KCBC 입장에서 저희가 온 것이 본인들의 기도 응답이었다는 고백에 많이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기도케하시며, 그 간절함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뤄가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KCBC와 하나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작업들이 더러 있겠지만 일단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고 계시다는 확신은 또다른 느낌의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기도하는 일을 쉴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여쭙고 그뜻에 나의 마음을 내어드릴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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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앗싸 주님~~ , 제4권 45호

(요한1서 2장 / 새번역)

15.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17.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사단이 인류를 미혹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육체의 욕망 (정욕)', '눈의 욕망 (탐심)',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 (세상적 자랑)'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개역개정본으로 보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마음을 죄로 여기고 여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죄와 싸우는 모습들을 봅니다. 너무나 귀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너무나 고생스러운 것임을 알기에 여러분에게 끝내주는 팁 하나 드리고자 오늘 칼럼을 적습니다.


만약 내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그 밤에 주님께서 꿈에 찾아오셔서 "니 아이가 서울대 의대에 수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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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건강한 열정, 제 4권 44호, 11월 4일 화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많은 경우 젊었을 때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그 시절 수고에 대한 나머지 인생은 보상받는 삶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10대, 20대 때에 평생 갖게 될 직업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을 가든 직업을 배우든 그 시절에 배운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머지 인생을 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가 가장 안정적인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 나에게 맞는 적성을 찾지 못하면 그때부터 나에게 맞는 적성을 찾기 위해 또 다시 다른 공부도 해보고, 또 다른 곳에 취업도 해보고, 새로운 기술도 배워 보는 등 '나의 적성'을 향해 시간과 재정을 투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만해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30대 40대 50대가 넘어도 내 적성이 무엇인지 모르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분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신기할만큼 관심이 없기도 합니다. 그저 매사 불평 불만만 있고, 무엇을 하든 열정이 없을 때가 가장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주셔서 적어도 가족 부양에 관한 열정으로 살게끔 만들어 놓으신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삶에 열정이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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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 땅끝, 제 4권 43호, 10월 28일 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명'을 '대사명'이라고 합니다. '대사명 (Great Commission)'은 마태복음 28:18-20 으로, 18.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대사명'의 핵심 사역은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이유가 궁금하신 분들은 생명의 삶을 들으시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제자 삼는' 이 '대사명'을 감당하면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대사명'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 주신 말씀이 바로 사도행전 1:8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8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제자'를 삼을 수 있는데 그런 삶이 바로 '증인의 삶'입니다.


요즘은 사도행전으로 새벽과 주일 예배의 설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을 위해 '증인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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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사마리아, 제 4권 42호, 10월 20일 월

(사도행전 1장 / 새번역)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니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순서를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입니다. 지난 몇주의 시간동안 '예루살렘'은 '나 자신', '유대'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적/육적인 '자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마리아'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북이스라엘(사마리아 지역)은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면서 이방 민족과 섞이게 되었고, 남유다(유대 지역)는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며 히브리 전통을 더 보존하게 됩니다. 따라서 엄연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지역적/민족적으로 완전히 단절된채 시간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방인들과 섞였다는 이유로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천대받는 위치에 서게됩니다.

그랬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사마리아'를 바라보시는 마음이 더 간절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루살렘과 유대는 '전도'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와 땅끝은 '선교'의 영역입니다. 주님을 증거한다는 차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차이점으로 '전도'는 언어와 문화가 동일한 곳에서 주님을 증거하는 행위이고, '선교'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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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 유대, 제 4권 41호, 10월 13일 월

지난 주일 설교를 살짝 리뷰해 보면, 우주 최고의 '장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명품'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명품'으로 창조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명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냐 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명품'의 모습으로 한주를 멋지게 지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명품'으로 창조되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두주 전부터 사도행전 1:8 말씀인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말씀으로 우리의 비젼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주 전에는 '예루살렘'부터 '땅끝'을 간단하게 모두 설명해 드렸고, 지난 주에는 '예루살렘'에 대해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번주는 '유대'에 대한 비젼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1:8 말씀의 핵심은 '증인'의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의 '증인이 될 것'이냐하면, 바로 '예수님'의 '증인'을 말합니다. 장소는 바뀌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십니다. '예루살렘'은 나 자신에게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면, 오늘의 '유대'는 '가족' 특별히 '자녀'들에게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가장 힘든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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