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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말씀 위에 세워지는 목장과 성령님의 역사, 통권 제 5권 13호, 2026년 6월 19일 금

사랑하는 방주 성도 여러분, 한 주간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하셨지요?

지난주 우리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와 능력이 흘러가는 실제적인 삶의 현장이 바로 하나님께서 묶어주신 믿음의 울타리, ‘목장(공동체)’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목장에서 함께 무릎을 모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춤추시며 치유와 돌파의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목장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을 지속해서 경험하기 위해 가장 단단히 붙잡아야 할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말씀의 기초 위에 목장이 설 때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목장으로 모여 단순히 세상적인 위로나 개인의 경험만을 나눈다면, 그 모임은 일반적인 친목 도모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목장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일 때, 그 자리는 영적인 부흥의 현장으로 변화됩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진리의 말씀과 함께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고백하며 서로의 삶을 나눌 때, 성령님은 그 말씀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채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능력이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2. 말씀대로 순종할 때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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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성령님이 일하시는 자리, 통권 제 5권 12호

사랑하는 방주 성도 여러분, 한 주간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하셨지요?

지난주 우리는 삶 속에서 예수님의 실제적인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 영적 호흡인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누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영적인 숨을 쉴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도의 능력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가장 아름답고 구체적으로 열매 맺는 ‘실제적인 삶의 현장’은 어디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묶어주신 믿음의 울타리, ‘목장(공동체)’입니다.

성령님은 홀로 고립되어 있는 자리보다, 성도가 연합하여 함께 기도하는 곳에 더욱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1. 성령님은 공동체의 기도를 통해 춤추십니다

우리가 혼자 기도할 때도 하나님은 들으시지만, 삶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 기도할 힘조차 상실할 때가 있습니다. 영적인 호흡 곤란이 찾아온 순간, 나를 위해 대신 무릎 꿇어주고 함께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목장 식구들이 있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목원들이 함께 모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의 무릎을 모을 때,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치유의 역사가 임합니다.


2. 목장은 성령님의 능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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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 인생의 거센 풍랑 앞에서, 통권 제 5권 9호, 2026년 5월 18일

인생의 거센 풍랑 앞에서 “이제는 기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라며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는 것은 알겠는데,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숨조차 쉬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가장 강력하게 일하시는 때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은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선포합니다. 내가 입을 열지 못할 때에도, 내 안의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친히 하나님 아버지께 부르짖고 계십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가 낙심할 때 “너는 끝났다”며 참소하지만, 성령의 탄식 소리는 그 거짓을 파하고 우리의 영을 다시 깨웁니다. 내 힘이 아닌 성령에 이끌려 다시 무릎 꿇을 때, 우리는 환경을 뛰어넘는 하늘의 평안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위로와 만지심은 ‘목장 모임’이라는 사랑의 공동체를 통해 비로소 완성됩니다.

성령님의 탄식으로 겨우 숨을 쉬며 목장 모임에 나아갔을 때, 나를 위해 함께 울어주고 손 잡아주는 지체들을 통해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온몸으로 경험합니다. 골방에서 성령님이 내 영을 심폐소생술 하셨다면, 목장 모임은 그 숨을 가지고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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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 제 5권 8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그 순간, 놀라운 영적 신비가 일어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영원히 거주하시는 ‘성령의 내주하심’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었고, 이 영역은 그 어떤 악한 영도 감히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침범할 수 없는 안전한 빛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성도들이 삶 속에서 여전히 의문을 가집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데, 왜 내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왜 나는 또다시 같은 죄와 상처 앞에 무너지는가?”

이유는 우리의 ‘영’은 즉각적으로 구원받아 거룩해졌지만, 우리의 생각과 감정, 삶의 습관을 담는 ‘혼과 육’의 영역에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와 쓴 뿌리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계시는 거룩한 집 한구석에, 우리가 미처 치우지 못한 ‘영적인 쓰레기’들이 쌓여있는 것과 같습니다. 악한 영들은 바로 이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죄의 흔적들을 통로 삼아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고 공격합니다.

그렇다면 이 내면의 어두운 방들을 청소하고 영적인 쓰레기를 치우는 실제적인 힘은 어디서 올까요? 일차적으로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능력을 우리 일상으로 끌어오는 가장 강력한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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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기도의 시간, 제 5권 7호, 5월 7일 목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가벼운 눈빛이나 짧은 감탄사만으로도 모든 마음이 전달되곤 하죠. 성경이 말하는 ‘방언’ 또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그 친밀한 사귐을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소통 방식입니다.


​방언은 내가 이해하는 단어의 한계를 넘어가는 기도입니다. 때로는 내 이성이 "감사합니다"라는 한 문장에 머물러 있을 때, 내 영은 방언을 통해 그보다 훨씬 깊고 풍성한 고백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로마서 8장은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라도,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내 지식의 경계를 넘어 성령의 파도를 타고 하나님 마음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묻습니다.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하지만 방언은 논리의 대화라기보다 '사랑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구체적인 문장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흐르는 깊은 신뢰의 표현이죠.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 앞에서 옹알이를 할 때, 부모는 그 소리 속에 담긴 기쁨과 욕구를 다 알아듣고 미소 짓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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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 방언이 뭐지? 제 5권 6호, 4월 29일 수

방언을 떠올리면 어떤 사람은 신비를, 어떤 사람은 부담을 느낍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앙의 '레벨 업'처럼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문제를 그렇게 긴장된 주제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꽤 현실적으로 바라보며 과장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방언은 사람들이 실제로 알아듣는 언어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였죠. 그런데 고린도전서에 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교회 안에서 방언이 넘치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수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바울은 방언의 본질을 분명히 합니다.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말, 즉 개인적인 영적 소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에서는 깨달은 다섯 마디가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 여기서 기준이 나오는데 그것은 '개인의 체험'보다 '공동체의 유익'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방언을 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이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질서를 강조합니다. 결국 문제는 방언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우월감도, 강요도, 무시도 모두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방언은 겉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아무도 못 알아듣는 말을 하니까요. 하지만 이것을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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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올바른 방향성과 지속성, 제 5권 5호, 4월 26일

우리는 삶을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삶이라는 여정속에서 나아가는 올바른 방향성입니다.그리고 두번째는 그 방향이 옳다고 여겨지면 지속하여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닌, 교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 역시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겨지만 지속하여 꾸준히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방향은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 희미해 질 때 교회는 인간적인 모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교회가 교회의 존재 목적인 영혼 구원 사명을 붙잡고 애쓸 때 교회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교회가 많은 사역을 하지만 영혼 구원의 열정이 식으면 교회는 점점 힘을 잃고 약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일이 분주하다고 그것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번 주 몸이 피곤하다고 하나님의 소원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 신앙생활 가운데 올바른 방향 즉, 영혼 구원의 열정을 놓고 간절히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혼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우실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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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개미에게서 얻는 지혜, 제5권 4호, 2월 26일 목

이 집에 이사온지도 벌써 일년하고도 두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세월이 참 빠른것 같습니다.

이 집에 처음 이사오던 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바닥을 보니까 개미가 주차장에서 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주차장에만 있었고 집 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말 큰일을 치루고서 3주만에 처음으로 부엌뒤에 식품 창고?에 들어갔더니 개미가 한 가득 있었습니다. 아무리 외로워도 개미와 동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개미가 새롭게 터전을 잡은 이유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보다보니 저희 창고에 '팜슈가' 봉지가 살짝 뜯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팜슈가'를 버리고 난 후 2~3일이 지나니까 개미들이 싹 없어졌습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시간이 지나 개미로부터 자유하며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난주부터 커피머신 주위로 개미가 또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엔 무엇일까 열심히 찾았는데 이번에는 꿀통 뚜껑에 보이지도 않는 구멍으로 왔다 갔다하며 저의 꿀을 누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꿀통을 잘 닦아서 다른 통 위에 올려놨습니다. 그랬더니 이녀석들을 다시 부엌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녀석들은 '공동체 생활'에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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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테트리스, 제5권 3호, 2월 17일 화

어린 시절 오락실을 가면 버블버블 다음으로 많이했던 게임이 아마도 테트리스였던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은 빈칸 없이 차곡차곡 블럭들을 잘 쌓아가다보면 다 채워진 줄은 자동으로 없어지고 그렇게 일정 량의 줄들이 없어지면 그 다음 단계로 승급되어 계속 진행되는 게임입니다. 빈칸이 있으면 안되는 곳에 빈칸들이 생기다 보면, 줄을 없애지 못하고 게임에서 지게 됩니다.


요즘 저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처해있는 상황에서 공허함을 종종 느끼곤 하는데, 이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에 대해 기도하며 고민을 하곤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가운데에서도 공허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계실수 있으시기에 이번 칼럼은 공허함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 공허함은 당연히 하나님으로 채워야 하고, 말씀으로 채워야 하고, 성령님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다른 또 다른 영역인지 뭔지 계속해서 유지되는 이 공허함은 테트리스에서 꼭 채웠어야 했던 곳을 채우지 못한채 그 위로 끝없이 블럭들이 쌓여만 가는 느낌입니다.

빈 곳을 기도로도 채워보고 말씀으로 채워보고 순종으로도 채워봤지만 채워졌다는 기대만큼의 감동은 못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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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번방주교회 & 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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